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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해석 뜻 후기

by 그들의 아름다움 2024. 6. 5.

존 오브 인터레스트 해석 뜻 후기 

OTT가 대세인 요즘. 그럼에도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 영화가 있다고 하죠. 그런 영화들이 내세우는 강점에는 비주얼과 사운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할 때마다 비주얼은 늘 사운드보다 먼저 언급됩니다. 그만큼 대형 스크린이 전하는 시각적 쾌감은 영화 관람의 1순위니깐요.

사람의 오감 중 가장 민간함 것은 청각이라고 합니다. 그런 기준에 볼 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반드시, 꼭 극장에서 봐야 그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사운드가 극의 핵심이자, 진정한 메시지니깐요. 개봉 전부터 엄청 기대했는데 보고 나오니 그 후유증과 소름이 아직도 가시지 않네요. <타짜>의 명대사를 인용해 작품의 한 줄 평을 남깁니다.

귀는 눈보다 빠르다

그것이 비극일 경우에는 더더욱

작년 칸영화제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 올해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음향상 수장작이고 작품상 노미네이트까지. 벌써부터 '올해의 영화'급이라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여러가지를 리뷰와 해석으로 정리해봅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영화....死운드로 향하는 사운드

스샷으로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여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깐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 이처럼 느긋하고, 평화롭고, 밝은 작품이 있을까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서 살고 있는 독일군 장교 루돌프 회스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작품입니다.

스토리적으로 설명할 것이 없어요. 그냥 루돌프 회스 가족의 하루를 보여주고 관찰할 뿐입니다. 이렇다할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반전도 없습니다. 쿠키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정원을 가꾸고, 그렇게 저녁에 다시 가족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잠이 듭니다. 이게 끗. 그런데 보입니다. 홀로코스트의 처참한 광경이. 아니 정확하게는 들린다고 해야겠죠.

 

<존 오브 인터레스트>은 비주얼이 관객을 속이고, 사운드가 진짜 진실을 말합니다. 정확히는 사운드가 아니라 죽어가는 누군가의 소리, 즉 死운드입니다. 화면 내내 들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희미한 소음이 그렇습니다. 총소리가, 비명이 계속해서 들립니다. 근데 그게 크지도 않아요. 더 얄미운 것은 이들 소음을 회스 가족이 내는 일상 소음과 같이 겹칩니다.

예를 들어 회스 가족 막내 아기의 울음 소리와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가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립니다. 구분하기 쉽지 않죠. 회스 가족이 발 구르는 소리와 아우슈비츠에서 오늘도 집행하는 총살 소리 역시 비슷하게 울립니다. 자세히 귀 기울이면 그 차이를 알지만, 그냥 느긋하게 관람하면서는 쉽게 들리지 않을 거에요. 마치 그때 당시 이런 비극이 있음에도 언제나 처럼 일상을 살아갔던 수 많은 사람들 처럼요. 영화가 의도한 바도 그렇습니다. 지옥 같은 일이 실시간으로 일어남에도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는데 바빴을 것이라고. 그게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닌 반박불가인 것이 씁쓸.

더 소름끼치는 것은 이런 소리를 계속해서 외면하는 회스 가족의 일상입니다. 분명 비명소리와 총소리 등 끔찍한 사운드가 자기 집 밖에서 나오는데 회스 가족 중 누구도 이를 인지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집에 놀러온 지인이 갑작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릴 뿐. 영화는 폭력과 학살에 익숙해진 회스 가족과 소음을 분간하는 사람을 차이에 두고, 앞에서 말한 비판적인 시선을 배가합니다.


✅끔찍한 장면 없이 끔찍한 영화

영화 대부분이 멀리서 회스 가족을 비춥니다.

진짜 그것 뿐인데....

<컨저링> 개봉 때 이런 문구가 대박 났죠.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 그렇다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끔찍한 장면 없이 끔찍한 영화입니다.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치고 이렇다할 사상자나 학살 장면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 작품은 처음입니다. 그저 오로지 회스 가족을 관찰하고 목격할 뿐이죠. 이 작품의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총 10개의 카메라를 마치 예능 프로의 관찰 카메라처럼 배치해 연기자들의 모습과 영상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렇다할 인물을 포커스하는 클로즈업(카메라가 인물을 과도하게 접근해서, 캐릭터의 감정이나 행동을 관객이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촬영기법)이 거의 없고, 원샷(영상에 한 사람만 나오는 장면)도 많이 없습니다. 오로지 와이드숏 (카메라를 먼 거리에 두고 피사체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극을 담아냅니다.

거의 유일하게 루돌프 원샷을 잡을 때가 있는데, 이때도 먼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고독한 모습 뿐.근데 이때 그가 본 것은!!!

(아마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일 것입니다....)

충격적인 것은 극중 담아내는 영상 모두 홀로코스트를 시행했던 독일군만을 비춘다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목도하게 되는 것이죠. 분명 관객들의 마음은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누군가인데, 이 반대로 호위호식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불편함은 당시의 참혹함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올드보이>에서 오달수가 이런 대사를 하죠. "인간은 상상을 해서 무서운 거래". 근데 이 놈의 영화는 직접적으로 학살 당하는 이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상상으로 그때의 끔찍함을 제 머릿 속에 자헤 재현하게 만듭니다. 그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대단한 점이자, 소름 돋는 순간이죠. 이런 체험이 100여분 계속됩니다. 단 하나의 끔찍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데 보는 내내 압박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공무원으로서 일을 한 것뿐..... 학살이라는 일

 

영화의 사운드, 연출, 영상만 소름 돋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들의 연기, 정확히는 극중 캐릭터들의 태도 또한 혐오와 충격 사이에서 혼란을 건넵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니깐요.

회스가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가스실 건축을 고민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회의하는 모습. 소재만 떼고 본다면 여느 회사의 평범한 회의랑 다를 것이 없습니다. 건축 도면을 보고 시공은 이렇게 하고, 업무 배분은 저렇게 하자는 등 그냥 흔한 시설 정비 회의를 나눈 것 뿐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국가 공무원으로서 그저 맡은 바 일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잔혹하고, 불쾌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죠.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모든 대화나 설정이 이렇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온한, 하지만 들여다볼 수록 역겨운 속셈들이 보는 이의 양심을 계속해서 자극합니다.

이런 상황을 대표적으로 부각하는 모습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스 부인이 다른 사람들과 차 한잔을 나누며 대화를 하지만, 카메라는 이 집의 하인들의 모습에 더 관심을 둡니다.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이들은 묵묵히 일을 하고, 가해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수다를 떠는 모습. 이런 극명한 대비를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벽 하나를 두고 삶이 극명하게 갈린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회스 가족 집안 처럼 말이죠.

나중 루돌프 회스가 전근을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군인이, 공무원이 별 수 있나요? 나라가 까라면 까야지. 대신 그의 부인은 머뭇 거립니다. 아우슈비치를 떠날 수 없다고. 여기서 가꾼 텃밭과 꽃들, 그리고 이 평화로운 집을 놔두고 갈 수 없다고.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입니다. "이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순간이라고."

하루에도 수 만 명이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가는 이 지옥 같은 곳이, 누군가에게는 꿈의 집이라는 아이러니. 어이상실과 멘탈 붕괴의 콜라보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도 계속됩니다. 악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짚어봅니다.


전체적으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지루하다는 생각조차 죄책감을 자동 소환하는 영화

홀로코스트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사실 친절하거나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니지만 심심하죠. 작품의 핵심 연출인 사운드 역시 자세히 듣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고 말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작품의 음향 효과가 익숙해지고, 살짝 지루해지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도 섬뜩했습니다. 나 역시 회스 가족들처럼 집 밖에서 일어나는 비극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것마저 조나단 글레인저가 의도했다면 무서울 정도네요.

어쩌면 영화는 비단 홀로코스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TV와 인터넷에서는 연일 누군가가 죽고, 무언가가 부서지며,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그런 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치부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뭔가 모를 죄책감을 계속 건드립니다. 내가 목격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관심 없다고 해서 명백히 일어났던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깐요. 계속해서 울리는 비명과 총소리가 듣기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비극과 부조리 앞에서 귀를 닫아서는 안됨을 영화는 다시 한 번 들려줍니다. ★★★★☆

PS. 영화를 보실 꺼면 꼬오오옥! 반드시! 극장에서 보시길 바랍니다. 돌비시네마에서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야 말로 그런 영화관이 필요한 진정한 이유일 것 같네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알고 보면 괜찮을 TMI

이동진 평론가님의 언택트톡에서 참고했습니다

🟩 이 작품의 주인공인 루돌프 회스는 실존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실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우슈비츠 수용소 책임자로 수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전쟁 이후 정원사로 몸을 숨겼지만, 결국 발각. 죽는 순간에도 나는 그저 나라에서 하라는 일만 했을 뿐이라고 하네요. 이 인물을 잘 알고 보시면 영화가 더 소름 돋을 것입니다.

🟩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원작 소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 소설과 영화는 루돌프 회스 부부를 소재로 했다는 것 외에는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소설은 루돌프 회스와 아내, 그 아내를 사랑하는 독일 장교의 삼각 관계라고.

🟩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뜻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명칭입니다. 이와 더불어 나치 친위대가 사용했던 사악한 의도가 담긴 완곡 어구 중 하나라고 하네요. 당시 나치는 해당 지역의 농지를 몰수하고, 노동력을 강제 착취하는 등의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홀로코스트 영화의 극치에 이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6월 5일 국내에 찾아온다. 본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명칭이기도 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우슈비츠에 그들만의 왕국을 만든 회스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마틴 에이미스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했고, 홀로코스트의 가해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소설의 시각을 이어받아 기존의 홀로코스트 영화와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전개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프로듀서 제임스 윌슨과 함께 무려 10년의 시간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스태프들과 함께 3년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에 있는 다양한 사료들을 샅샅이 살피고,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의 증언이 담긴 ‘블랙북’을 전부 훑으며 영화의 밑바탕이 되는 자료들을 최대한 많이 수집했다. 그렇게 10년의 제작 과정을 거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비롯한 4관왕,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 등을 받으며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다. 또 지난해 '더 가디언'을 포함한 해외 유력 매체 4곳에서 올해의 영화로 꼽히며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홀로코스트 재현의 시각을 뒤바꾼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후기와 함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말을 전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에델)의 가족은 아우슈비츠의 왕국 안에 산다. 회스 부부는 꽃이 만개한 정원과 그들의 다섯 아이가 놀 수 있는 풀장까지 갖춘 그들만의 저택 안에서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 햇빛이 내리비치는 강가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정원에 자란 꽃 이름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면서. 하지만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담장 밖에서는 자꾸만 그들의 평화로움을 깨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인공들을 악마화하기보다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회스 가족의 가장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리하는 총지휘관이다. 루돌프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으로, 가정에서는 다정한 아버지로 제 역할을 다한다. 그는 아내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와 함께 아우슈비츠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든다. 그곳에서 루돌프는 아이들과 괴물 놀이를 하고, 아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한없이 다정한 가장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와중에도 종종 먼 곳을 바라보며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회스 가족 중 유일하게 담장의 안팎을 넘나드는 인물인 루돌프는 끔찍한 현실과 이상적인 가정의 경계 위에서 혼돈에 빠지며 서서히 현실에 잠식되어 간다. 그의 아름다운 저택을 둘러싼 높은 장벽은 그를 지켜주지 못하고, 현실의 참혹함에 압도당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아내 헤트비히 회스는 왕국 안의 모든 것을 손수 만들었다. 담장을 따라 포도나무를 잔뜩 심어두고, 정원에 색색이 화려한 꽃들을 심고 가꾼다. 온실과 가제보, 풀장까지 저택 안 모든 것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부지런함은 오로지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만 쓰인다. 헤트비히는 담장 안의 아름다운 것들로 담장 밖을 가려둔다. 그녀에게 담장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방어막과 같고, 담장 너머의 보이지 않는 현실쯤은 외면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남편에게서 전출 소식을 전해 들을 때도 그녀는 분개하며 자신의 왕국을 떠나지 않으려 한다. 한편 헤트비히는 남편이 바깥에서 칭송받고, 자신이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 불리는 것에 흡족해하며 자랑하는 세속적인 면도 지닌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회스 부부의 제 역할을 다하고, 남편의 전출 소식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여느 평범한 가정과 같다. 10년 동안 감독과 함께 영화를 준비한 프로듀서 제임스 윌슨은 가해자인 그들을 우리들과 같은 보통의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해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원작 소설을 통해 그들의 시각을 알 수 있었다. 영화로 만들 때 주인공들을 신비화하거나 악마화하기보다는 그들도 보통의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흥미롭고도 불편한 질문에 대한 문을 열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너무 쉽고 편하게 이입하고 공감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가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어느 정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분리와 폐쇄성을 강조한 감각적 연출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회스 가족의 아름다운 저택을 둘러싼 담장 밖에는 유대인들을 격리하는 수용소와 학살하는 소각시설이 있다. 높은 장벽으로 인해 그들은 담장 너머의 끔찍한 현실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완전히 가리지는 못한다. 소각 시설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하늘을 뒤덮고, 담장을 넘어선다. 또 회스 가족의 화목한 일상과 병치되는 총소리와 비명 소리, 아기 울음소리 등의 사운드는 그들이 여전히 끔찍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실제 회스 부부의 삶에 존재했던 구획화와 그들이 옆에 두고 살아갔던 공포를 강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왼) 루돌프 회스, 헤트비히 회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카메라는 종종 움직이는 인물을 고정된 채로 포착한다. 방문을 닫아 두고 유대인이 입었던 모피코트를 슬쩍 걸치며 거울 앞에 서는 헤트비히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거나, 어두운 밤 방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잠그고 불을 끄는 루돌프를 복도 끝에서 주시하기도 한다. 루돌프가 어둠에 드리운 복도에 서 있는 이미지는 유대인들이 수용 시설에서 마주했을 법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실제 영화가 “나치가 사는 집의 불법적이고 악의적인 감시 장치이길 원했다”고 말하며, 촬영 장소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고정으로 설치해 두고 따로 마련된 벙커에서 원격 케이블 시스템을 통해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 결과 회스의 집은 완벽히 분리된 공간으로 거듭난다.


어둠의 세력에 반대하는 순수한 빛

<존 오브 인터레스트> 포스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소녀는 건설 현장 곳곳에 유대인 포로들을 위해 사과를 묻어둔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은 소녀의 행위를 유추하기 어렵게 만든다. 소녀의 금지된 행동은 루돌프가 침대 위에서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깊은 밤과 같은 시간에만 이루어져야 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실존 인물인 폴란드 출신의 비유대인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코우오제치크를 모델로 했다. 소녀였던 알렉산드라는 밤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포로들을 위해 사과와 배 같은 음식을 남겨뒀다. 감독은 그녀의 실화를 접하고 어둠의 세력에 반대하는 순수한 선함에 매료되었고, 이를 영화 속에 담으려 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감독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소녀의 모습이 아닌 온기를 담아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소녀의 온기는 색색이 화려한 회스 부부의 정원보다 더없이 시적이고 아름답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존재인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에게도 선을 행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소녀가 사과를 심어두는 장면과 회스가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두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두 인물의 대조적인 입장을 더욱 부각한다.